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나오는 것 없이 인풋만 쌓아오고 아웃풋을 배출하지 않는
나를 보시고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쌓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
무언가 나와야 하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이를 듣자마자 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하지만, 왜?'
(...)
'받은 것을 돌려주어야 한다.',
'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등의 소리는 심심치 않게 들어볼 수 있다.
얼핏 듣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당연한 말이다.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이는 '~해야 한다.',
즉 당위의 측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당위를 논증하기 위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사실이 아닌 보편적이고 범인류적으로 적용되는 규율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
정당화할 수 있는 당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렇기에 '배움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따위의 당위도 정당화될 수 없다.
논리적으로는 말이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것은 실용적인 당위뿐이다.
인간과 사회가 발전해 갈 때,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너무나 공동체에 유익했기에 그것을 당위로 인식하도록
선택압을 받았을 뿐이다.
(...)
그러나 실용적 당위는 언제까지나 '실용적인' 당위일 뿐이다. 구속력이 없다.
실용적 당위를 그냥 믿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편하게는 살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니체의 노예와 다를 게 무엇일까.
거짓되고 무의미한 속박에 스스로 매여 사는 사람.
차라리 모든 당위를 부정하며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다.
가치체계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당위가 성립되지 못한다.
물론 그 당위 중에는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도 포함되어 있다.
(...)
물론 이는 가치체계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임으로,
임의의 가치체계를 가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바로 신이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윤리적 당위를 내버리기보다는,
차라리 임의의 가치체계를 상정하고 그 위에서 진정한 당위를 가지는 삶을 살아가기로 택했다.